과르네리 델 제수(Guarneri del Gesù)는 스트라디바리우스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바이올린을 제작한 명장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18세기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활동한 델 제수는 자신만의 독특한 음향과 디자인 철학으로 오늘날에도 많은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특히 야사 하이페츠, 이츠하크 펄만, 힐러리 한 등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그의 바이올린을 애용했으며, 파가니니 역시 그의 악기를 연주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글에서는 과르네리 델 제수의 생애와 제작 특징, 대표 악기, 그리고 그의 악기를 사용하는 거장 연주자들에 대해 상세히 소개합니다.
과르네리 델 제수의 생애와 배경
과르네리 델 제수는 본명은 주세페 안토니오 과르네리(Giuseppe Antonio Guarneri)로, 1698년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크레모나의 악기 제작 가문인 과르네리 가문(Guarneri family) 출신으로, 할아버지 안드레아 과르네리(Andrea Guarneri), 아버지 주세페 과르네리(Guarneri filius Andreae) 역시 유명한 현악기 제작자였습니다. 그러나 델 제수는 가족의 전통적인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양식과 철학을 확립하며 전혀 다른 경로로 명성을 쌓아갔습니다. “델 제수(del Gesù)”라는 별명은 그의 라벨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악기의 라벨에 종종 “IHS”라는 예수의 상징을 새겨 넣었는데, 이는 가톨릭 신심에서 유래한 것이며, 이후 사람들은 그를 ‘예수의 과르네리’라는 의미에서 “델 제수”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스트라디바리와 거의 동시대에 활동했지만, 그 스타일은 매우 달랐습니다. 스트라디바리가 우아하고 정제된 구조를 추구했다면, 델 제수는 보다 강렬하고 자유로운 구조를 통해 독특한 음색과 울림을 만들어냈습니다. 델 제수의 생애는 미스터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가 어떠한 교육을 받았는지, 제작 기법은 어디에서 유래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감옥 생활을 했다는 설, 제작 기간이 짧았다는 주장까지 있으며, 실제로 그가 제작한 악기의 수는 약 150~180정도로 추정되어 스트라디바리보다 훨씬 적습니다. 그러나 그는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스트라디바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명장으로 남았으며, 오늘날 그가 만든 악기들은 희귀성과 음질 면에서 최고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과르네리 델 제수 바이올린의 특징
과르네리 델 제수의 바이올린은 겉보기엔 다소 투박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매우 과학적이고 음향적으로 탁월한 설계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바이올린이 우아하고 고운 음색을 강조한다면, 델 제수의 악기는 보다 강력하고 직선적인 울림, 풍부한 저음, 그리고 폭넓은 다이내믹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특성은 협주곡이나 대규모 홀에서 특히 큰 장점을 발휘하며, 강한 존재감을 가진 연주자들에게 선호되었습니다. 가장 큰 특징은 두꺼운 목재, 불균형해 보이는 F홀, 짧은 스트링 길이, 그리고 두드러진 곡선과 덜 정제된 외관입니다. 이는 마치 ‘미완성’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독창적인 구조가 오히려 현대 연주자들이 원하는 다이내믹한 표현력과 깊은 울림을 가능케 하는 요소입니다. 델 제수는 자신의 제작 방식에 있어 철저히 직관에 의존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악기의 나무 두께를 일정하지 않게 제작하거나, F홀의 위치나 각도를 매 악기마다 다르게 적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실험이 아니라, 실제 음향적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적인 설계였다는 점에서 그 천재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많은 제작자와 학자들은 이러한 특성이 델 제수만의 ‘와일드한 울림’을 만들어내는 비결이라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의 악기를 실제로 사용한 연주자들은 “바이올린이 나를 대신해 연주하는 느낌”, “무대에서 소리가 튀어나오는 느낌”이라고 표현하며, 다른 바이올린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각을 언급합니다. 실제로 니콜로 파가니니는 델 제수의 1743년산 바이올린을 사용했으며, 이 악기는 ‘일 카논(Il Cannone, 대포)’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합니다. 그만큼 폭발적이고 강렬한 음향을 자랑했기 때문입니다.
대표 모델과 세계적인 사용자
과르네리 델 제수의 바이올린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악기는 단연 “일 카논(Il Cannone)”입니다. 이 악기는 1743년에 제작되었으며, 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Niccolò Paganini)가 애용했던 바이올린입니다. 이름 그대로 ‘대포’라는 뜻의 ‘일 카논’은 파가니니의 폭발적인 연주 스타일과 완벽하게 어우러졌으며, 오늘날에도 이 악기는 이탈리아 제노바 시에서 엄격히 보관되고 있습니다. 매년 한 차례씩 후계자로 선정된 바이올리니스트가 이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며, 그 자체로 하나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또 다른 유명한 악기로는 “레이디 블런트(Lady Blunt, 1744)”가 있습니다. 이 악기는 2011년 소더비 경매에서 약 1500만 달러(한화 약 170억 원)에 낙찰되며, 역대 스트라디바리우스나 델 제수 바이올린 중 최고가로 기록된 바 있습니다. 레이디 블런트는 영국 귀족 가문 소유였으며, 악기의 상태가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 학문적 가치도 매우 높습니다. 현대의 연주자 중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계적 거장들이 과르네리 델 제수 바이올린을 애용했습니다. - 야사 하이페츠(Jascha Heifetz): 그만의 강한 음색과 기교는 델 제수의 특성과 잘 어우러졌습니다. - 이츠하크 펄만(Itzhak Perlman): 1743년산 델 제수를 사용하며, 따뜻하면서도 파워풀한 음색을 구현했습니다. - 기돈 크레머(Gidon Kremer): 실험적인 해석과 델 제수의 깊은 울림이 조화를 이루는 연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 힐러리 한(Hilary Hahn): 스트라디바리우스보다 델 제수의 ‘직관적 울림’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르네리 델 제수의 악기는 현재 대부분이 박물관, 재단, 또는 국가 소유로 관리되며, 몇몇은 세계적인 연주자에게 장기 대여되는 방식으로 연주되고 있습니다. 델 제수의 악기를 사용하는 것은 연주자에게는 명예이자 책임이며, 악기의 가치뿐 아니라 예술적 역사까지 계승하는 의미를 갖습니다.
과르네리 델 제수는 단순한 바이올린 제작자가 아니라, 음향적 천재이자 독창적인 예술가였습니다. 그의 바이올린은 스트라디바리우스와는 또 다른 개성과 울림을 제공하며, 많은 연주자들이 평생 단 하나의 악기로서 그를 선택합니다. 클래식 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델 제수의 악기와 연주자들을 통해 바이올린의 다양성과 깊이를 경험해보길 권합니다. 그가 만든 악기 하나하나에는 기술을 넘어선 직관, 감성, 그리고 예술이 담겨 있습니다.